SERIES · 02 · CLUSTER A 자기 인식

검사 결과는 왜 책상 서랍에서 잠드는가 — 자기이해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진짜 이유

MBTI도, 강점검사도, 직업적성검사도 받았다. 그런데 왜 삶은 그대로일까. 한 심리학자의 척도가 알려주는 비어 있는 한 단계.

· 8분 읽기 · 자기 인식 · 시리즈 2편

책상 서랍 안의, 잠든 결과지들

당신의 책상 서랍, 혹은 핸드폰의 어떤 폴더 안에는 아마 이런 것들이 잠들어 있을 겁니다.

MBTI 결과지. 강점검사 결과지. 직업적성검사 결과지. 애니어그램, DISC, 버크만…

받을 때는 분명히 "이번에는 다를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결과를 받은 그날 저녁, 친구에게 보내주며 "나 ENFJ래"라고 말한 기억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납니다. 그 결과지는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삶은 — 그대로입니다.

한국인의 평균 —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검사했다

통계청 2022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은 자기계발 활동에 하루 평균 일정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1 이 안에는 책 읽기, 강의 듣기, 그리고 각종 자기이해 검사가 포함됩니다.

정확한 수치를 잡기는 어렵지만, 한국에서 성인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받는 자기이해 관련 검사의 수는 MBTI 1회 이상, 강점검사 1회 이상, 직업적성검사 1회 이상 — 즉 평균 3종 이상이라는 추정이 자주 인용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많이 받았는데, 왜 자기이해는 여전히 어렵다고 느낄까?"

답은 검사 결과의 정확성에 있지 않습니다. 검사는 대부분 충분히 정확합니다. 답은 — 검사 결과와 자기이해 사이에 비어 있는 한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Steger의 척도가 알려주는, 비어 있는 한 단계

미네소타 대학의 마이클 스테거(Michael Steger)는 2006년, Meaning in Life Questionnaire(MLQ)라는 척도를 개발해 Journal of Counseling Psychology에 발표했습니다.2 이 척도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삶의 의미"를 한 차원이 아니라 두 차원으로 나누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스테거의 후속 연구가 보여주는 가장 의외의 사실은 이것입니다.

"가장 큰 불안과 우울은, 탐색이 높고 현존이 낮은 상태에서 나타난다."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가장 열심히 찾는 사람이, 가장 못 느끼는 상태로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검사 결과를 책상 서랍에 잠들게 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MBTI도 받고, 강점검사도 받고, 또 다른 검사도 받으려고 알아보는 사람 — 이 사람은 가장 적극적인 탐색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결과지들은 모두 탐색의 흔적일 뿐, 현존의 도구로 전환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습니다.

"결과를 받는다"와 "결과를 안다"는 다르다

여기에 한 가지 작은 연구가 더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도미니칸 대학의 게일 매튜스(Gail Matthews) 박사는 2015년, 목표 달성에 관한 한 실험을 발표했습니다.3 그가 발견한 사실은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목표를 머릿속에만 가진 사람보다, 그 목표를 손으로 글로 적은 사람의 달성 확률이 42% 높았다.

이 연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 검사 결과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머릿속에 떠 있는 "나는 ENFJ다"는 자기이해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한 줄의 정보입니다. 자기이해가 되려면, 그 결과가 내 손을 거쳐 종이 위에 놓이는 한 번의 변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환은 — 검사 결과지를 펼쳐 놓는 것과 다릅니다. 결과지를 펼친다는 것은 "보는" 행위입니다. 손으로 옮겨 적는다는 것은 "선택하고, 압축하고, 다시 쓰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잘못 짚어온 것

여기까지 정리하면, 우리는 한 가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검사 결과가 책상 서랍에 잠드는 이유는 — 검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자기이해를 했다"고 잘못 짚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이해는 한 단계 더 있어야 완성됩니다.

단계행위머무는 곳
1. 검사답을 고른다시스템 안
2. 결과 수령결과지를 받는다PDF·이메일
3. 변환(전환)결과를 내 언어로 다시 적는다내 노트·종이
4. 행동한 줄의 결정을 내린다일상

대부분의 사람은 2단계에서 멈춥니다. 결과지를 받고 — 읽고 — 책상 서랍에 둡니다.

3단계는 시간도 많이 들지 않습니다. 결과지에서 본인에게 가장 와닿은 한 줄, 또는 가장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한 줄을 종이 위에 손으로 옮겨 적는 것. 그게 다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행위가 검사 결과를 내 것으로 만듭니다.

왜 손으로 적어야 하는가 — 다음 글의 예고

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따라옵니다.

"꼭 손으로 적어야 하나요? 키보드로 입력하면 안 되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의 한 신경과학 연구가 알려줍니다.4 손으로 글을 쓰는 행위는 타이핑과는 다른 뇌의 영역들을 동시에 활성화합니다.

다음 글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지금은 한 가지만 기억해 두세요. 손은 느립니다. 그래서 손은 요약하고, 선택하고, 재구성합니다. 이 느림이 곧 자기이해의 핵심입니다.

오늘 밤, 한 줄만

이 글을 닫기 전에, 단 한 가지만 제안합니다.

책상 서랍을 열어 — 또는 핸드폰의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 가장 최근의 검사 결과지를 꺼내 보세요. 그리고 그 안에서 딱 한 줄을 골라 종이에 손으로 옮겨 적어 보세요.

기준은 둘 중 하나입니다.

그 한 줄이 적힌 종이를 일주일 동안 책상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세요. 일주일 뒤, 그 한 줄이 당신의 한 결정을 얼마나 바꾸었는지 — 작은 결정이라도 — 한 줄 더 적어보세요.

검사 결과를 살아내는 일은, 이 두 줄에서 시작됩니다.

참고 자료 (Sources)

  1. 통계청 (2022). 생활시간조사. kostat.go.kr
  2. Steger, M. F., Frazier, P., Oishi, S., & Kaler, M. (2006). The Meaning in Life Questionnaire: Assessing the presence of and search for meaning in life. Journal of Counseling Psychology, 53(1), 80–93. DOI: 10.1037/0022-0167.53.1.80
  3. Matthews, G. (2015). The Impact of Commitment, Accountability, and Written Goals on Goal Achievement. Dominican University of California.
  4. van der Weel, F. R., & van der Meer, A. L. H. (2024). Handwriting but not typewriting leads to widespread brain connectivity. Frontiers in Psychology, 14, 1219945. DOI: 10.3389/fpsyg.2023.1219945